미술을 두고 “예전 그림이 더 잘 그렸다”라는 말은 거의 본능처럼 튀어나온다. 르네상스나 바로크 시대의 회화를 떠올리면, 인체의 비례는 정확하고, 피부의 질감은 살아 있으며, 빛과 공간은 실제처럼 느껴진다. 반면 현대미술 전시장에 들어서면, 단순한 선이나 거친 형태, 의미를 바로 파악하기 어려운 작업들이 관람자를 맞이한다. 이 차이는 단순한 취향의 문제가 아니다. 미술이 무엇을 가치로 삼아왔는지, 그 기준이 어떻게 이동해 왔는지를 보여주는 결과다.
기술은 오랫동안 미술의 핵심 가치였다. 미술이 하나의 독립된 분야로 자리 잡기 이전부터, ‘잘 그린다’는 개념은 명확했다. 그것은 현실을 얼마나 정확하고 설득력 있게 재현할 수 있는가였다. 인체를 실제처럼 그리는 능력, 원근법을 통해 공간감을 만들어내는 기술, 명암과 색채로 입체감을 표현하는 능력은 화가의 실력을 판단하는 절대적인 기준이었다.
이 기준은 개인의 감각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공유된 규칙이었다. 미술 교육은 이 규칙을 반복적으로 훈련시키는 과정이었고, 아카데미 시스템은 무엇이 올바른 표현인지 정답을 제시했다. 관람자 역시 이 구조에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에, 작품을 볼 때 자연스럽게 기술적 완성도를 기준으로 판단했다. 미술은 감정이나 해석의 영역이라기보다, 숙련된 기술을 감상하는 대상에 가까웠다.
사진의 등장은 미술의 역할을 근본적으로 흔들었다
사진의 등장은 단순한 기술 발전이 아니었다. 그것은 미술이 담당해 온 역할 자체를 위협하는 사건이었다. 사진은 인간의 손보다 빠르고 정확하게 현실을 기록할 수 있었고, 그 결과 미술이 독점하던 재현 기능은 무너졌다.
이 변화는 화가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더 이상 현실을 똑같이 그리는 것이 최고의 가치라면, 사진보다 나은 선택지가 될 수 없었다. 이 시점에서 미술은 갈림길에 서게 된다. 재현 기술을 더욱 극단적으로 발전시킬 것인가, 아니면 재현 이외의 가치를 찾아 나설 것인가. 결과적으로 미술은 후자를 선택했다.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대신, 현실을 바라보는 시선과 해석을 드러내는 방향으로 이동한 것이다.
표현 방식보다 사고방식이 평가의 중심이 되다
미술이 재현에서 벗어나면서, 작품을 평가하는 기준도 자연스럽게 이동했다. 더 이상 “얼마나 닮았는가”보다는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어떤 질문을 던지는가”가 중요해졌다. 이 변화는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미술의 기능 변화에서 비롯된 필연적인 결과였다.
이때부터 기술은 작품의 전면에서 물러났다. 기술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눈에 띄지 않게 숨겨진 것에 가깝다. 현대미술 작품 중에는 겉보기에는 단순해 보이지만, 복잡한 개념적 구조와 사회적 맥락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경우가 많다. 관람자가 느끼는 난해함은 작품이 비어 있어서가 아니라, 평가 기준이 달라졌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기 때문에 생긴다.
‘못 그린 것처럼 보이는’ 작품이 등장한 구조적 이유
현대미술에서 일부러 거칠거나 미완성처럼 보이는 표현이 등장한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이는 기술 부족의 결과가 아니라, 오히려 기술 중심 평가에 대한 비판이다. 지나치게 매끄러운 표현은 관람자의 감탄을 유도하지만, 동시에 질문을 차단할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작품들은 아름다움이나 완성도를 목표로 하지 않는다. 대신 관람자가 불편함을 느끼거나, 기존의 기준을 의심하도록 유도한다. 그래서 현대미술은 종종 “성의 없어 보인다”거나 “아무나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이는 작품이 실패해서가 아니라, 의도적으로 다른 평가 방식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준의 변화는 예술의 몰락이 아니라 역할의 확장이다
기술 중심 미술이 약화된 것을 두고 예술의 퇴보라고 말하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미술사적으로 보면, 이는 몰락이 아니라 역할의 확장에 가깝다. 미술은 더 이상 기술 경쟁의 장이 아니라, 사고와 질문을 제시하는 영역으로 이동했다.
이 변화는 예술의 문턱을 낮추는 동시에, 관람자에게 더 큰 부담을 주었다. 정답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불확실성은 예술의 약점이 아니라, 새로운 가능성이다. 미술은 늘 기준이 흔들리는 순간에 가장 큰 변화를 만들어 왔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느끼는 혼란 역시, 그 변화의 한 과정에 놓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