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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어떤 그림을 예술이라 부르게 되었을까? 미술 감상 기준이 만들어진 역사

by 요리조리도리 2026. 1. 25.

미술을 보며 “이게 왜 예술이지?”라는 질문이 떠오르는 순간은 생각보다 자연스럽다. 이 질문은 감상자의 무지나 감각 부족에서 비롯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질문은 아주 정확한 문제의식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예술이라고 부르는 기준은 자연적으로 생긴 것이 아니라, 역사 속에서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지고 합의된 결과이기 때문이다. 미술은 언제나 존재했지만,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예술’이라는 개념과 감상 기준은 결코 오래되지 않았다.

 

예술은 원래 감상의 대상이 아니었다

고대와 중세 사회에서 그림과 조각은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예술의 역할을 하지 않았다. 그것들은 감상이나 개인적 취향의 대상이 아니라, 종교적 의례나 권력의 상징, 기록 수단에 가까웠다. 성당 벽화를 본 사람들은 작품의 구도나 색채를 평가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 그림이 전달하는 신의 메시지를 읽었다.

이 시기의 미술에는 ‘좋고 나쁨’을 가르는 미적 기준이 존재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정해진 형식을 잘 따랐는지, 종교적 상징을 정확히 구현했는지였다. 다시 말해, 미술은 자유로운 표현이 아니라 규칙을 수행하는 기술이었다.

 

기준이 생기기 시작한 순간: 르네상스의 전환

미술 감상 기준이 형성되기 시작한 결정적 시점은 르네상스다. 이 시기부터 미술은 신과 권력의 도구에서 점차 인간의 능력과 사고를 드러내는 영역으로 이동한다. 원근법, 해부학적 인체 표현, 현실적인 공간 구성은 단순한 기술 발전이 아니라, “잘 그린 그림이란 무엇인가”를 판단하는 기준이 되었다.

중요한 점은 이 기준이 자연스럽게 생긴 것이 아니라, 특정 계층과 교육 시스템을 통해 확산되었다는 사실이다. 미술 아카데미와 이론서, 비평가의 등장은 미술을 평가하는 언어를 만들어냈고, 그 언어를 아는 사람들만이 ‘올바른 감상자’로 인정받았다.

 

미술 감상은 학습된 능력이다

우리는 흔히 미술 감상을 개인의 감각이나 취향 문제로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로 감상 능력은 상당 부분 학습의 결과다. 명암이 뛰어나다거나, 구도가 안정적이라는 판단은 선천적인 감각이 아니라 반복적인 교육과 노출을 통해 형성된다.

이 과정에서 특정 양식과 시대의 작품들이 ‘위대한 예술’로 지정되고, 그 기준이 표준처럼 굳어진다. 문제는 이 기준이 절대적인 것처럼 받아들여지면서, 그 밖의 표현 방식은 자연스럽게 배제되었다는 점이다. 우리가 어떤 작품을 보며 “이상하다”라고 느끼는 이유는, 그 작품이 잘못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배운 기준과 어긋나기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미술관은 기준을 고정시키는 공간이다

미술관은 단순히 작품을 전시하는 공간이 아니다. 미술관은 무엇이 예술이고, 무엇이 중요한지를 은근하게 규정하는 역할을 한다. 어떤 작품이 미술관에 걸렸다는 사실만으로도, 그 작품은 이미 ‘검증된 예술’이 된다.

이 과정에서 관람자는 자연스럽게 수동적인 위치에 놓인다. 전시된 작품을 의심하기보다, 이해하지 못하는 자신을 먼저 돌아보게 된다. 그러나 미술관이 제시하는 기준 역시 역사적, 사회적 맥락 속에서 만들어진 것일 뿐, 절대적인 진리는 아니다.

 

취향과 기준은 다르다

많은 사람들이 “내 취향이 아니야”라는 말로 작품 감상을 끝낸다. 하지만 취향과 기준은 분명히 구분할 필요가 있다. 취향은 개인적인 선호이고, 기준은 사회적으로 공유된 판단 체계다. 문제는 이 둘이 자주 혼동된다는 점이다.

우리는 종종 기준을 취향처럼 받아들이고, 그 기준에 맞지 않는 작품을 무가치하다고 판단한다. 그러나 기준은 언제든 변할 수 있으며, 실제로 역사 속에서 수없이 바뀌어 왔다. 과거에는 조악하다고 평가받던 작품이 훗날 걸작으로 인정받은 사례는 셀 수 없이 많다.

 

누가 기준을 만들었는가

미술의 기준은 작가 혼자 만든 것이 아니다. 비평가, 후원자, 제도, 시장이 함께 작동하며 기준을 형성해 왔다. 특정 작가가 위대한 예술가로 평가받는 과정에는 개인의 재능뿐 아니라, 그를 지지한 담론과 환경이 존재한다.

이 구조를 이해하지 못하면, 우리는 예술을 마치 초월적인 가치처럼 오해하게 된다. 하지만 실제로 예술의 기준은 사회의 가치관, 권력 구조, 경제적 조건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예술은 언제나 중립적이지 않았다.

 

기준이 흔들릴 때 혼란이 시작된다

오늘날 미술이 어렵게 느껴지는 이유는, 우리가 배워온 기준이 더 이상 절대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다양한 표현 방식과 문화가 공존하면서, 단일한 판단 기준은 유지되기 어려워졌다. 이때 발생하는 혼란은 예술의 위기가 아니라, 기준의 다원화 과정에 가깝다.

과거에는 하나의 기준에 맞춰 평가받던 미술이, 이제는 서로 다른 기준 속에서 공존하게 되었다. 이 변화는 불편함을 동반하지만, 동시에 새로운 해석 가능성을 열어준다.

우리는 왜 어떤 그림을 예술이라 부르게 되었을까? 미술 감상 기준이 만들어진 역사

미술을 ‘판단’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

미술 감상에서 반드시 옳고 그름을 가릴 필요는 없다. 모든 작품을 이해하거나 좋아해야 할 의무도 없다. 중요한 것은 작품을 통해 드러나는 기준의 작동 방식을 인식하는 것이다.

“이 작품은 왜 이렇게 평가받는가”, “내가 불편함을 느끼는 이유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작품 자체보다 훨씬 깊은 사고를 유도한다. 이 질문을 던지는 순간, 관람자는 수동적인 소비자가 아니라 비판적 감상자가 된다.

 

기준을 아는 것이 자유로워지는 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미술의 기준을 이해할수록 우리는 그 기준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 기준이 절대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작품 앞에서 느끼는 압박은 줄어든다. 이해하지 못해도 괜찮고, 동의하지 않아도 문제없다.

미술은 정답을 요구하는 시험이 아니라, 사고의 확장을 허용하는 영역이다. 우리가 예술을 어렵게 느껴온 이유는, 기준을 몰라서가 아니라 기준을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여왔기 때문일지도 모른다.